사니와 일지/연성

[츠루사니] 립글로즈

Air_aria 2017. 11. 23. 00:13

* 쿠지 굿즈중에 츠루마루 립글로즈가 있어서 쓰게 된 연성

* 오리지널 사니와 등장합니다


공백포함 3762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아 벌써 11월이다. 11월이면 가을과 겨울의 중간인 만큼 서서히 추워질만도 하지만 요즈음의 기온은 초겨울이 아니라 겨울 한중간이다. 무려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진다니. 더위보다 추위를 더 많이 타는 이 혼마루의 사니와에게는 혹독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옷을 껴입고 다니는 성미도 아니지만. 다행히도 감기가 쉽게 걸리는 체질이 아니어서 그렇지, 그마저도 아니었으면 매일매일 현세의 사무실에서도 혼마루의 집무실에서도 골골대기만 했을 것이다.


  혼마루의 날씨는 사니와의 역량과 재량에 따른다. 이곳에도 분명한 사계절이 존재하지만, 여름이 너무 더울 때엔 더위의 정도를 조정하기도 할 수 있고, 겨울이 추울 때엔 덜 춥게 할 수 있고, 아예 계절 자체를 바꿔버리는 혼마루도 있다고 한다. 사실 이런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친분이 있는 사니와도 특별히 없고 있다 해도 다른 혼마루에 방문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필수 참석 요망'이라는 공문을 받고 참석한 연수에서 우연히 주워들어 알게된 것이다. 사니와 자신에게는 마치 판타지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처럼 거리가 먼 이야기였기 때문에 현실감을 느끼기도 힘들었다.


  모름지기 사니와라면 신을 섬기는 동시에 신을 부리는 존재이기 때문에 내재된 영력이 필요불가피하다. 남사들을 포함하여 혼마루의 모든 것은 사니와의 영력을 필요로 한다. 사니와가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능력이고, 사니와를 임명하는가 마는가에 대한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사니와는 열외에 속한다. 사니와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건강 검진중, '영력 측정' 항목에 0이 적혀있더라도 '자격 미달' 도장이 아니라 '정부 마크'가 찍힐 뿐일테다. 비록 영력이 0을 찍은 기록은 없었지만 사니와 자격을 위한 최소한의 수치마저 미치지 못했는데도 소위 하이패스인 '정부 마크'가 찍힌 결과지를 받을 때마다 사니와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 혼란스러웠다.


  어쨌든간에 그러한 사정으로 사니와는 이 날씨를 그대로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날씨가 춥다보니 건조하기까지 하다. 조금만 더 어릴 때만 해도 겨울이 왜 건조하다는거죠?ㅇㅅaㅇ하고 살았는데 이 나이가 되어보니 알겠다. 확실히 건조하다. 1년 전보다 더 건조하다. 이렇게 매해를 거듭할 때마다 더더욱 건조해지는게 아닐까. 사니와도 직장인도 아니던 백수시절에는 핸드크림을 달고 살았더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이다 뭐다 바쁘다고 바르는 것을 거르다보니 손부터 급격히 건조해져 버렸다. 노화는 손부터 시작된다고 하던가...건조한 것은 점점 영역을 넓혀갔다. 최근에는 기름기 돌던 얼굴마저 건조함으로 푸석해졌다는 걸 직감하기 시작했다.


  "여! 주인! 뭔가? 그 가련한 비운의 여주인공인 마냥 뺨에 손을 대고 한숨 쉬는 건?"


  건조하다고 뺨을 만지고 있던 게 꽤나 작위적으로 보였나보다. 급등장한 검이 주인을 놀래주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느닷없이 튀어나와 말을 걸었는데도 그의 주인은 전혀 놀라는 기색없이 하얀 남사를 올려본다.


  "뭐긴 뭐예요. 아직도 팔팔한 천살 할배랑 달리 늙어가고 있어서 한숨 쉬는거야."


  "이런. 주인이 늙었다니 놀랍지도 않은데."


  "봐요. 얼굴 건조해진거. 이렇게 매일 보고있는데도 모르겠어요? 음 얘기하기 전에 알아채서 주인의 피부관리까지 신경써달라는건 역시 과한 욕심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잖아?"


  무의미하게 턱을 매만지며 곤란하다는 표정보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은 남사는 금세 재미있는게 생각나기라도 한 건지 장난끼 가득한 얼굴을 한다.


  "...흐흥~ 어디어디? 보자, 놀랍게도 가능할지도 모르네! 이 두루미에게 맡겨봅세~"


  "아익, 뭐하는거야!"


  츠루마루 특유의 흑백 분명한 장갑을 낀 양손을 뻗어 사니와의 얼굴을 잡고는 이리저리 살펴본다. 아무리 할아범이라지만 노안이 있을 일은 없을텐데, 관찰을 하겠답시고 쓸데없이 가까이 한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잘 돌아가지도 않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근시의 팔을 붙잡아 떼내려고 애쓰는 사니와.


  "어이구 너무 반항하면 잘 보이지 않는다고? 그렇게 과격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주인이 부끄럼 타고 있다는건 잘 알고 있으니까 말야. 애초에 말을 꺼낸 건 주인이면서. 뭐, 항상 그렇지."


  그런 사니와가 익숙하다는듯 하하하 호쾌하게도 웃으면서 놓아줄 생각은 요만큼도 없는 것같다. 주인은 츠루마루의 그 웃음소리에 동작을 멈추고 '이런 의미로 얘기한 게 아니잖아!!!'라고 말하는 표정으로 세게 노려본다. 그래봤자 츠루마루의 시선에는 울긋불긋 상기된 얼굴로 올려보고 있는 거로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혼마루의 모두에게 침착하다고 평가받는 주인이, 자신의 앞에서라면 침착을 잃고 겉껍데기 없이 순도 높은 반응을 보여주곤 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주인의 가장 사랑스러운 부분이다. 다른 도검들이 모르는 주인을 오로지 혼자서 알고 있다는 것은 그가 오랜시간 근시자리를 독점한 것처럼 어느 누구도 아닌 츠루마루 쿠니나가만이 독차지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자신만의 주인. 주인만의 검. 수없이 많은 주인을 거쳐온 그에게 있어 제일가는 이상이다.


  워낙 가까이 붙어있었기 때문에, 빛을 받아 반짝이는 은색 속눈썹이 드리우고 입술이 맞닿을 수 있는 거리가 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이대로 눈을 감고 받아줄만도 한데 사니와는 기겁을 하며 그의 입을 틀어막는다. 덕분에 츠루마루는 사니와의 손바닥에 가로막혀 불만을 표한다.


  "윽!! 주이인~! 요즘 유독 더 안 받아주는거 아닌가! 아와타구치의 장남 때문인가? 그런건가?"


  "그런거 아니고, 건조하다고 했잖아요. 나 입술 지금 건조해서 텄어... 정확히는 귀찮아서 제 때 안 발라줘서 그런거지만..."


  그 말에 츠루마루가 맨살이 드러난 세 손가락 중 하나인 엄지로 사니와의 입술선을 따라 더듬어 직접 확인하고선 납득했는지 순순히 놓아준다. 나는 상관없지만 주인이 영 신경 쓰인다면야 어쩔 수 없지. 라며 포기. 하지만 사니와는 그에 안심하지 못하고 또 무슨 해코지를 할까봐 힐끗힐끗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립글로즈를 꺼낸다. 립밤은 아니지만 아쉬운대로 보습은 되겠지 싶어 입술로 가져가자마자,


  ...사람은 속여도 신은 못 속이는걸까. 그렇다면 사람도 잘 못 속이는 사니와가 신은 어련하겠는가. 사니와의 손에 들린 립글로즈를 재빠르게 낚아채 빼앗아 든 츠루마루가 의기양양하게 미소짓는다. 아, 진짜, 누가 얘 좀 말려줘 (식은눈으로 바라보는 사니와는 안중에도 없고 립글로즈에 호기심을 보이다가 한참 뒤에야 사니와에게 눈길을 주더니 말똥말똥 바라본다.


  "입술...?"


  "응, 입술에 발라요."


  아하~! 하며 이해했다는 듯 감탄하더니 한손으로 왼뺨을 부드럽게 잡고선 사니와를 향해 립글로즈를 고쳐잡는다. 아니아니 그러지마 아니 내가 바를건데 아니 제발 속으로 외쳐대는 내면과 달리 양볼만 붉히고선 꿈쩍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있자 곧 살짝 차가운 립글로즈의 감촉이 입술 전체를 감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니와의 입술에 닿았던 립글로즈가 떨어지고, 한겨울에도 립밤이 전혀 필요없을 만큼 부드럽고 말랑한 입술이 오른쪽 뺨에 닿았다. 하하하, 입술이 아니라서 예상 외였나? 화려하지않고 투명하게 반짝이는 펄을 담은 주인의 입술을 보며 하얀 검의 입술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응, 왠지 약이 오르니까 이 립글로즈가 츠루마루 쿠니나가를 모티브로 하여 만든 굿즈라는 건 입 다물고 있자.


 안타깝게도 츠루마루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사니와는 그 빌미로 된통 당했다고 한다.